[부자동네타임즈=서소민 기자] MBC가 다큐멘터리 2부작 ‘사이비 헌터’를 통해 1994년 발생한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 소 소장 피살 사건을 다시 짚었다. 방송은 1부와 2부로 편성돼 각각 5월19일과 26일 밤 9시에 전파를 탔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영화 ‘사바하’에서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박목사’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 탁명환 소장의 삶과 죽음을 따라간다. ‘사이비 헌터’라는 말은 사이비 종교 단체에 직접 잠입해 비리를 폭로하는 일을 직업이자 사명으로 삼은 사람을 가리키며, 당시 탁 소장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인물로 활동했다.
탁명환 소장은 신천지, 통일교, JMS, 구원파 등 각종 신흥종교 집단의 초창기 비리를 현장에서 직접 드러낸 종교 연구가이자 저널리스트였다. 그 과정에서 납치와 차량 폭발, 암살 시도 등 약 70여 차례의 테러를 겪었고, 매일 유서를 품에 넣고 다닐 정도로 극한의 위협에 노출됐다. 그럼에도 사이비 종교와의 싸움을 이어가다 1994년 2월18일 자택 아파트 복도에서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영화 ‘사바하’ 모티브가 된 ‘사이비 헌터’ 탁명환 소장, 테러·암살 시도 끝 피살된 당시 정황을 재조명헸다.
사건 직후 수사는 범인 임홍천을 향했다. 범행 사흘 만에 붙잡힌 임홍천은 당시 26세의 평범한 시골 청년으로, 전과도 없었고 탁 소장과 일면식도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의 운전기사였고, 검찰은 박 목사를 살인의 배후로 지목했다.
그러나 임홍천이 구속되던 날 박윤식 목사가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사건은 다른 국면을 맞았다. 임홍천은 조사 과정 내내 단독 범행을 주장했고, 3년 뒤 귀국한 박 목사는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사건은 수십 년간 수면 아래에 머물렀다.
다큐멘터리는 탁 소장의 죽음이 남긴 공백이 그의 가족에게 어떤 궤적을 남겼는지도 비춘다. 아버지를 잃은 세 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이비 종교 문제에 맞서는 길을 택했다. 첫째 탁지일은 신학대 교수, 둘째 탁지원은 탁 소장이 세운 ‘현대종교’ 대표, 셋째 탁지웅은 일본 성공회 신부로서 사이비 종교 피해자들 곁을 지키고 있다.
세 형제는 아버지를 살해한 임홍천에게 사형이 구형됐을 때 두 차례에 걸쳐 감형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를 살려야 진실이 밝혀진다”는 이유에서였고, 결국 재판부는 15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임홍천은 30년 동안 침묵을 유지했으며, 세 아들이 줄곧 박윤식 목사를 배후로 지목하며 법정에서 다퉜음에도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이비 헌터’ 제작진은 이번 작업에서 오랜 시간 입을 닫고 지내온 임홍천을 직접 만났다. 제작진이 확인한 현재의 임홍천은 아내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과거 교회 기숙사에 얹혀 살던 가난한 청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이 변화의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 추적한다.
제작진은 2026년 취재 과정에서 탁 소장 피살 32년 만에 새로 드러난 내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임홍천이 출소 후 교회를 상대로 “돈을 주지 않으면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겠다”고 요구했고, 실제로 교회 측이 돈을 건넸다는 진술과 정황을 확보한 것이다. 이는 세 아들이 30년 넘게 주장해온 ‘사주 배후설’과 맞닿은 강력한 단서로 다뤄진다.
방송을 둘러싸고는 박윤식 목사의 아들과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 임홍천 씨 등이 제작금지 및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며 또 한 번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26년 5월6일 세 건의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종교 활동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알리고 주의를 촉구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이번 다큐멘터리의 공익적 목적을 인정했다.
이번 작업이 MBC에서 제작됐다는 점도 과거와 맞물린다. 탁명환 소장은 1994년 ‘PD수첩’에 출연한 지 사흘 만에 피살됐고, 당시 제작진은 그의 영정 앞에서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사이비 헌터’ 제작진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다큐가 30년 전 ‘PD수첩’이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출은 MBC ‘PD수첩’ PD이자 진행자 출신 서정문 PD가 맡았다. 서 PD는 “취재 중 나와 가족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순간 탁명환 소장이 매일 어떤 심정으로 살았는지를 몸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이비 헌터’는 사이비 종교의 폐해와 맞서 싸운 ‘헌터’의 시선으로 접근했다”며 “어두운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경쾌한 활극적 요소를 함께 담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는 드라마 제작사 ‘키이스트’와 공동 제작해 탁 소장의 활약상과 잇따른 테러 사건들을 극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설명이다. 제작진은 당시 현장을 옮기는 재연 장면과 취재 자료를 함께 배치해 사건의 흐름을 따라간다.
‘사이비 헌터’는 사이비 종교 단체 내부에 직접 뛰어든 한 인물의 삶과, 그가 남긴 질문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되짚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이걸 하려고 PD가 됐다…‘사이비 헌터’는 드라마로 제작할 예정”
이단 사이비 종교 연구가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피살 사건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사이비 헌터’ 연출한 MBC 서정문 PD
지난 5월 웨이브에서 다큐멘터리 ‘사이비 헌터’가 공개됐고 MBC에서도 방송됐다. 1994년 2월에 발생한 이단 사이비 종교연구가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피살 사건을 재조명한 다큐이다. ‘사이비 헌터’ 제작 과정과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다음은 연출을 맡은 MBC 서정문 PD를 ‘오마이뉴스 이영광의 '온에어' 426’에서 전화 인터뷰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사이비 헌터는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살해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32년 일인데 이걸 주목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사이비 종교 문제는 여전히 심각해요. JMS 정명석의 신도 성폭행, 코로나19 때 신천지의 방역 방해, 일본 아베 총리 피격 사건의 배경에 통일교 문제까지. 탁명환 소장은 이 종교들의 초창기부터 사회에 끼치는 폐해를 추적해 온 분이었는데 비극적으로 돌아가셨죠.
제가 탁명환 소장을 알게 된 건 사이비 종교 관련 보도에 전문가로 자주 등장하는 분들이 성이 탁 씨였거든요. 처음엔 친척인가 했는데 형제더라고요. 그분들의 아버님이 아들들과 같은 일을 하다 돌아가셨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어요. 32년 전 사건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사이비 문제에 경종을 울릴 수 있겠다 싶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아들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다큐를 시작하게 됐어요."

다큐멘터리 ’사이비 헌터‘ /MBC 키이스트
-방송 전에 방송금지 가처분 소송도 당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고 했는데 어땠어요?
"상대방 쪽에서는 과장됐다고 하지만, 32년 전 살인 사건이다 보니 이 사건을 아는 분들 대부분이 언급 자체를 두려워하셨어요. 배후로 의심받았던 교회가 여전히 건재하다 보니 말하면 신변에 위협이 있을 수 있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미국에 있는 평강제일교회 지교회를 취재하고 돌아왔더니 건조물 침입으로 고소를 당했는데, 고소장에 '미국에서는 실수로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 총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기사가 첨부돼 있었어요. 단순한 법리 설명이 아니라 굉장히 거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됐죠."
-그럼에도 다큐를 제작한 거잖아요. 어땠어요?
"이번 취재가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더 심했던 건 맞아요. 가족들도 걱정됐고요. 그럼에도 저에게는 MBC라는 조직도 있고 이 시대가 취재하는 사람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가하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탁명환 소장님은 조직도 없이 혼자서 무시무시한 종교 집단들을 상대로 폭로하고 싸워오셨거든요. 취재하면서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많은 테러 위협 속에서도 취재를 멈추지 않았던 탁명환 소장님의 외로움 같은 게 와닿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건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라는 확신도 생겼고, 그래서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벌어졌던 사건
- 다큐 못 본 분들 위해 탁명환 소장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 주세요.
"장재현 감독의 영화 ’사바하‘에서 이정재씨가 사이비 종교를 파헤치는 박 목사 역할을 했는데, 탁명환 소장님이 그 모티브가 된 인물이에요. 1970년대부터 한국에 새로운 종교들이 많이 탄생했는데, 그중에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종교들도 있었어요. 탁명환 소장님은 그런 사이비 종교들에 잠입 취재하고, 교주들을 직접 만나고, 피해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구제받을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을 해오셨어요. 한마디로 사이비 종교와 싸웠던 사이비 헌터입니다."
- 도입부가 고민이었을 거 같은데 탁명환 소장 피습 뉴스로 했잖아요. 이유가 있나요?
"너무 극적인 사건이다 보니 시청자들이 실화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부터 보여드릴 이야기는 실제로 한국에서 벌어졌던 사건입니다'라는 걸 가장 객관적으로 전달할 방법이 뉴스였던 거죠. 뉴스로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음을 증명하면서, 시청자들이 '내가 잘 몰랐던 이야기구나, 어떤 이야긴지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 사건 당일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당시 탁명환 소장님과 둘째 아들 탁지원 소장님이 영생교를 탈퇴한 사람들이 살해당해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제보를 받고 매장지를 찾아다니던 시기였어요. 살해당하기 3일 전에는 ’PD수첩‘ 영생교 편에 출연하기도 하셨고요. 1994년 2월 18일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둘째 아들이 차를 몰고 아파트에 들어와 탁명환 소장님을 먼저 내려드리고 주차하러 갔는데, 채 5분이 안 되는 그 사이에 탁명환 소장님이 자신의 아파트 복도에서 칼에 목을 찔려 돌아가신 거예요."
-지금 사회 문제가 되는 신천지나 통일교, JMS, 구원파 등의 문제를 탁명환 소장께서 1990~1990년대에 추적하셨다는 게 놀랍던데요.
"그렇죠.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요. 당시 한국에 신흥 종교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그 종교들이 사람들을 착취하고 괴롭힌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몰랐던 시기거든요. 탁명환 소장님은 그때 신천지 이만희, JMS 정명석, 특히 구원파 유병언과 오랫동안 싸워오셨고 꼼꼼하게 기록한 사진과 영상 자료들이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어요. 만약 탁명환 소장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계셔서 계속 활동하셨더라면, 그 이후 우리 사회가 겪었던 많은 비극과 재난들이 조금이나마 예방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 살해범인 임홍천씨는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 운전기사였잖아요. 그는 어떤 인물인가요?
"특전사 출신이고 요인 암살이 특기라는 소문이 있어요. 군인 신분일 때 누군가의 소개로 대성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박윤식 목사가 특전사 출신인 임홍천씨를 눈여겨봐서 운전기사로 썼다는 주변 증언들이 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1994년에 탁명환 소장님을 살해하게 된 거죠."

다큐 ’사이비 헌터‘의 연출을 맡은 MBC 서정문 PD /MBC 키이스트
■아버지가 살해당한 현장 30년 만에 다시 밟아
- 탁지원 소장이 30년 만에 다시 그 아파트 갔잖아요. 어땠나요?
"탁지원 소장님께 현장에 함께 가면 좋겠다고 제안드렸어요.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던 분으로부터 그날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고, 그날이 어떻게 보면 사이비 종교와 싸우는 일이 멈춰버린 한국 사회의 역사적 분기점 같은 날이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청자들에게도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탁지원 소장님도 흔쾌히 응해 주셨고요.
현장에서는 조금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살해당한 현장을 30년 만에 다시 밟는다는 게 보통의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제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 이강욱 당시 대성교회 장로를 인터뷰했잖아요. 섭외는 어렵지 않았나요?
"섭외가 굉장히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어요. 현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오래전 사건을 다시 꺼내기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그럼에도 당시 대성교회를 대표해서 많은 언론 인터뷰를 했던 분이라 꼭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연락처를 어렵게 수소문해서 연락드렸더니 흔쾌히 만나자고 하시더라고요. 만나서 들은 취지는, 당시 교회를 대변했지만 이후 교회를 나왔고 그때 사건에 대한 진실이 정리되지 않으면 한국 교회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양심의 고백을 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교회 측의 압박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는데, 마침 다큐 제작진이 연락해서 놀라웠다고 하시면서 흔쾌히 응해 주셨어요."
- 임홍천씨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 아니었나요?
"맞아요. 한 가지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만약 임홍천씨와 교회 관계자 사이에 금전적인 거래나 보상 요구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면 굳이 찾아가지 않았을 거예요. 어쨌든 15년간 복역하고 나온 사람에게 찾아가서 왜 살해했냐고 물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건 다큐 제작자로서 제 윤리적인 태도예요.
그런데 출소 이후 임홍천씨가 교회 관계자에게 진실을 덮는 대가로 보상을 요구했고 실제로 돈이 오갔다면, 이건 만나야 할 분명한 이유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모든 과정을 거쳐서 찾아간 거예요. 방송에는 현장에서 바로 만난 것처럼 표현됐지만 실제로는 문자와 전화를 수차례 했어요. 그런데 MBC 다큐 제작자라고 소개하자마자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고, 그래서 직접 찾아가야 했던 거죠."
- 임홍천씨는 자기도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
"그렇죠. 제가 취재한 내용으로는 임홍천씨가 출소 이후 교회에 보상을 요구했고 금전이 지급됐어요. 그 조건이 박윤식 목사의 사주가 있었다는 진실을 덮는 거였다면 이분이 참회했다고 보기는 어렵죠. 방송에서 임씨의 말이 길게 공개됐지만 본인은 모든 죗값을 다 치렀는데 왜 방송사가 찾아와서 괴롭히느냐고 계속 얘기했어요. 방송 직전에는 손해배상 청구와 방송 금지 가처분 소송도 걸었고 본안 소송도 준비 중인 것 같아요.
유가족들은 임홍천씨가 진실을 고백하길 오랜 시간 기다려 왔는데 지금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고 있거든요. 30년 넘게 기다린 결과가 이거라니 하는 생각이 드실 것 같아서, 그 사실을 유가족들에게 보여드리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다큐멘터리 PD로서 인생의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는 작품
- 영화 ’밀양‘의 장면이 그대로 보인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임홍천씨 이야기를 쭉 듣고 나서 도대체 누가 용서했나 싶었죠. 유가족들이 사건 직후에 용서하고 진실을 밝혀달라며 탄원서를 두 번이나 법원에 냈는데도, 진실은 숨긴 채 교회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고, 진실을 들으러 간 제작진에게는 분노를 표출하고, 유가족들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으면서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취지로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는 게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 5부 시작할 때 성경 예레미아 12장 1절 말씀이 나오던데 왜 넣으셨어요?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라는 구절인데, 여러 가지가 대비되거든요. 탁명환 소장님은 살해당했지만 배후로 의심됐던 박윤식 목사는 천수를 누리다 돌아가셨고, 임홍천씨도 잘 지내고 있어요. 박윤식 목사의 아들들은 미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고 들었고요.
반면 탁명환 소장님의 아드님들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물론 사이비 헌터라는 고귀한 소명의 삶을 살고 계시지만, 마음속에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품고 살아온 거죠. 그런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함께 작업한 작가님이 이 성경 구절을 얘기한 적 있거든요. 5부 마무리 회차에 넣게 됐어요."
- 제작하며 느낀 점은 뭔가요?
"이번 다큐는 정말 힘들었어요. 살인 사건이고 당사자들이 살아있는 이야기다 보니 압박감과 공포감이 굉장히 심했거든요. 유가족들이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계속 꺼내시게 해야 하는 부담도 컸고, 32년 전 사건에 아무도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얼마나 볼까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증언해 줄 수 있는 분들 중 돌아가신 분들도 꽤 있었고, 이 사건을 꺼내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그런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 다큐를 안 했으면 참 허무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뭐 하러 PD가 됐을까' 싶을 때가 있는데, 이걸 하려고 PD가 됐고 'PD수첩' 같은 어려운 프로그램을 통해 훈련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다큐멘터리 PD로서 인생의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는 작품이었습니다."
- 방송에 못 담은 것 중 이야기할 게 있나요?
"이 다큐에서 탁 소장님의 유쾌한 면이 좀 덜 표현된 것 같아서 아쉬워요. 사이비 종교들과 외롭게 싸우면서도 굉장히 유쾌하셨던 분이거든요. 1부에서 강의 중에 통일교 신도들이 난입해서 공격할 때도 웃으시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영상 자료나 인터뷰를 통해 그런 유쾌한 히어로 같은 모습을 많이 접했는데, 그런 인간적인 매력이 충분히 담기지 못한 것 같아요.
다만 이 다큐가 향후 드라마로 제작될 계획이 있어요. 유가족들도 동의해 주셨고요. 드라마가 된다면 한국 최초의 사이비 헌터였던 탁명환 소장님의 인간적인 매력과 유쾌함이 다큐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부분들이 잘 표현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족 “분노보다 부친 유업 완수가 먼저”…32년간 놓지 않은 소명
탁명환 소장 피살 사건의 이면 다룬 다큐 ‘사이비 헌터’에서 못다한 이야기
아버지를 살해한 사형수의 감형을 위해 두 차례 탄원서를 제출하며 배후를 밝히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30년 넘게 이어진 기약 없는 침묵이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는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세상을 놀라게 한 선의를 베푼 결과였다. 유족의 도움으로 15년형을 받은 살인자는 출소 후 양심선언은커녕 유가족을 향한 사과조차 함구했다.
MBC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최근 공개한 탁명환(1937~1994)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피살 사건의 이면(裏面)을 다룬 다큐멘터리 ‘사이비 헌터’에 담긴 유족의 현실이다. 1994년 일면식 없는 청년의 급습으로 창졸간 아버지를 잃은 세 아들 탁지일(62) 부산장신대 교수와 탁지원(58) 월간 현대종교 소장, 탁지웅(53) 일본성공회 동일본교구 사제는 그날 이후부터 지금껏 선친의 유업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이들은 국내외에서 암약하는 한국발 이단·사이비 종교 연구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국내 이단·사이비 단체를 연구한 고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의 유업을 이어받은 세 아들 탁지일(가운데) 부산장신대 교수와 탁지원(왼쪽) 월간 현대종교 소장, 탁지웅 일본 성공회 동일본교구 사제가 최근 부산의 한 카페에서 함께한 모습. 탁지일 교수 제공
지난 32년간 트라우마 속에 살아온 유족은 왜 보답받지 못할 호의를 베풀었고 무엇을 위해 아버지의 소명을 대 이어 지키는 걸까. 고인의 아내 김춘심(90) 사모와 세 형제를 국민일보가 대면과 서면 인터뷰로 최근 만나 그 이유를 들었다.
■순교자가 된 언론인
“내일모레가 네 엄마와 결혼 30주년이다. 영생교 문제만 좀 정리되면 이제 네 엄마와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야겠다.”
고인이 피습 직전 차남 탁지원 소장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암매장 사건으로 세간을 뒤흔든 영생교 피해자 증언이 발표된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번 증언으로 영생교는 일망타진될 것”으로 내다보는 부친을 보며 차남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1985년 자동차 폭탄 테러 등 신변을 위협받던 일이 종종 있던 만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운전 실수가 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김 사모가 평소 좋아하는 빵을 들고 먼저 집에 들어가던 부친은 결국 아내에게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즐겁게 지내자”는 말을 직접 전하지 못했다.

취재용 카메라를 든 탁명환 소장의 생전 모습. 국민일보DB
-고인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사람들을 바른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활동한 용기 있는 사람이지요. 이런 아버지의 길을 세 형제가 함께 걷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김 사모)
-신흥 사이비 종교 폐해를 사회에 알린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차에 설치된 폭탄이 터져 온몸에 파편이 박힌 상태에서도 제게 ‘카메라 가져와 현장을 담으라’고 말씀한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탁 교수)
■복수보다 앞선 원수 사랑
자택 앞의 고인에게 범행을 저지른 이는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 설립자인 박윤식 목사의 운전기사 임홍천씨였다. 검찰 관계자에게 ‘범인을 잡았다. 만날 생각이 있느냐’는 연락을 받은 탁지원 소장은 곧장 어머니를 찾았다. 이때 김 사모는 놀랍게도 ‘용서’를 언급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들려줬어요. ‘우리가 저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용서하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는 선에서 우리 가족이 용서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일 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탁 소장)

고인의 아내 김춘심 사모. 탁지일 교수 제공
그 이후 탁 소장은 임씨를 마주하고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어머니가 용서하라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배후와 공범에 관한 진실은 밝혀달라”는 유족 입장을 전했다. 당시 고개를 푹 숙인 임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평생 당신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는 게 탁 소장의 전언이다.
-32년이 흘렀지만 양심고백은 아직입니다.
“자신이 아닌 윗사람의 영향으로 잘못된 길을 갔다고 생각합니다. 선처를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김 사모)
-다큐에서 가해자가 “죗값 치렀다” “나도 불행하다”고 했습니다.
“임씨가 짊어질 고통의 무게가 더욱 커질 거란 생각에 안타까웠습니다. 자기 가족이 소중한 것처럼 우리 가족의 아픔과 상실은 훨씬 더 컸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방송에서 저를 만나겠다고 하던데 빈말이 아니라 언젠가 실현됐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괴로움 뒤에 모습을 감춘 채 아버지의 죽음을 교사하고 방조한 이들의 실체가 언젠가는 낱낱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울러 다큐 제작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어머니와 저희 형제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속마음을 나눈 적이 없습니다.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다큐 제작 제의도 몇 차례 거절했으나 제작진의 진정성 있는 설득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촬영하면서 그간 깊이 감춰둔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데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숙제를 푼 것과 같은 감사한 치유의 순간이었습니다.”(탁 교수)

1994년 피습당한 탁 소장의 별세 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김춘심 사모와 차남 탁지원 소장. 국민일보DB
-지금도 양심선언이나 사과를 기다립니까.
“제가 몸담은 현대종교에선 30년 넘게 사내예배에서 임씨의 양심선언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가 이거였나 싶어 허무감도 든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단 단체의 실체를, 그 끝이 어떠한지를 봤으니 진실을 밝히는 것이 당신과 당신 가족,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해온 모든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후의 결정 아니겠느냐고요.”(탁지원 소장)
“사과는 요구해서 받아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양심에서 우러나와야 그 의미가 있지요. 그가 무엇보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길 바랍니다.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직면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심판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탁지웅 사제)

2014년 부친의 20주기 추모예식에서 발언하는 3형제. 삼남 탁지웅(맨 오른쪽) 사제가 아버지가 피습 당시 입은 피 묻은 셔츠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국민일보DB
-3형제가 아버지의 일을 계속 잇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잇는 삶은 저희에게 선택이 아닌 운명과 같습니다. 가해자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보다 아버지가 남긴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복수라고 생각했습니다.”(탁 교수)
-버겁고 지칠 때는 없습니까.
“이단·사이비 단체 피해자의 눈물을 볼 때면 이 일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마다 그저 제 마음을 사로잡는 건 단 하나, ‘이들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뿐입니다.”(탁 사제)
“매일 만감이 교차하는 건 사실입니다. 웬만한 일엔 굳은살 배겼지만 소송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지금껏 들어온 소송만 300건이 넘었습니다.”(탁 소장)
-30년 전과 비교해 현 이단·사이비 단체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버지 시대의 수많은 재림주를 벤치마킹하고 업그레이드한 최신 이단이 온라인 곳곳에 활동하는 세상이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열렸습니다. 온라인에 미혹의 덫을 놓아 돈과 성, 노동력을 착취하는 신흥 한국 이단은 한류를 이용해 세계 곳곳에서 활동 중입니다. 사회적 순기능을 노출하는 방식으로 교회의 고립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들 단체로 인한 피해 발생 숫자와 그 빈도를 볼 때 이전보다 악화한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완연하게 사회 문제가 됐습니다.”(탁 교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간 아버지가 연구하고 저희 삼 형제가 연구한 자료를 세상에 조만간 내놓으려 합니다. 현대종교 디지털 아카이브 홈페이지(archive.hdjk.co.kr)에 접속하면 무료로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5개 국어 번역 작업도 완료했고요.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단 피해자의 회복에도 계속 힘쓰려 합니다.”(탁 소장)
-아버지와 아들이 30여년간 완성한 대업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 반드시 완수해야 할 마지막 의무이자 과제입니다.”(탁 교수)
영화 ‘사바하’에서 사이비 종교를 조사하던 주인공 박 목사의 실존 모델인 탁명환 소장의 삶은 이번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조만간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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